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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서
- 06 Dec, 2025
여자 영업이 술자리에서 겪는 것들 - 10년 경력도 피할 수 없었던 순간들
여자 영업이 술자리에서 겪는 것들 - 10년 경력도 피할 수 없었던 순간들 오늘도 저녁 약속 오늘 7시. K그룹 CISO님이랑 저녁. 제안서 넣고 한 달 지났다. BMT는 다음 주. "차장님, 저녁 한번 하시죠." 문자 왔다. 거절할 수 없다. 30억짜리 프로젝트다. SE랑 같이 가려고 했다. "혼자 오시죠." 답장 왔다. 아. 이런 거다. 샤워하고 메이크업 다시 했다. 너무 화려하면 안 된다. 너무 수수해도 안 된다. 재킷 입었다. 남성적인 느낌으로. '프로페셔널'하게 보여야 한다. 10년 했는데도 매번 계산한다. 무슨 옷, 어떤 말투, 어느 정도 거리. 남자 영업들은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첫 잔부터 시작되는 것 강남 한정식. 룸으로 안내됐다. CISO님 혼자. 부하 직원 없다. "오셨어요? 편하게 앉으세요." 자리 배치가 고민이다. 너무 가까이 앉으면 오해하고. 너무 멀리 앉으면 '거리감 두냐'고.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적당한 거리.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CISO님 이야기 듣고 싶었어요." 비즈니스 톤. 유지한다. 첫 잔 따라주신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웃으면서 받았다. 첫 잔부터 게임이다. 파워 게임. 받으면 '여자답다'는 소리 듣고. 안 받으면 '예의 없다'는 소리 듣는다. 그냥 받는다. 미소 짓고. "차장님은 술 잘 드세요?" 질문 온다. "적당히요. 일하는 데 지장 없을 정도로." 대답도 계산이다. 너무 잘하면 술친구 되고. 못한다 하면 '재미없다'고 한다.대화 주제의 경계선 "결혼은 안 하셨어요?" 두 잔 마시니까 시작됐다. 개인 질문. "아직이요. 일이 재밌어서." 웃으면서 답한다. "일만 하면 나이 가요. 여자는 빨리 해야죠." 아. 이분 그쪽이구나. "요즘은 결혼 늦게 해도 괜찮더라고요." 부드럽게 화제 돌린다. 제안서 얘기로. "다음 주 BMT요, 저희 DLP 성능이..." "일 얘기는 나중에." 손 저으신다. "오늘은 편하게 얘기해요." 편하게의 뜻. 나는 안다. 개인적인 얘기 하자는 뜻. "집은 어디세요?" "부모님은 뭐 하세요?" "남자친구는?" "어떤 스타일 좋아해요?" 질문이 계속 들어온다. 대답해야 한다. 안 하면 '차갑다'고 한다. 차갑다는 평가 나오면. 프로젝트 날아간다. 그래서 대답한다. 적당히. "집은 역삼동이요. 회사 가깝게." "부모님은 대전이세요." "남자친구는... 일 때문에 만나기 힘들어서요." 웃으면서. 계속 웃는다. 왜 남자 영업들은 이런 질문 안 받을까. 팀장님 술자리 가면 골프 얘기만 한다는데. 나는 매번 이런 질문 받는다.선을 지키는 기술 "차장님 참 예쁘네요." 세 잔째. "감사합니다." 짧게 받는다. 더 이상 대답 안 한다. 화제 돌린다. "다음 주 BMT에서 경쟁사 M사 나온다고 들었는데요." "M사 가격은 싸지만 기능은 저희가 우위예요." 비즈니스로 돌린다. 계속. "일 얘기는 그만하고." 또 손 젓는다. "차장님, 스트레스 많이 받죠? 영업이 힘들잖아요." "괜찮아요. 이 일 좋아해서 하고 있어서요." "저랑 편하게 지내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여기서부터 조심이다. 라인이다. "감사합니다. CISO님이 많이 도와주시니까 저희 제안서도 잘 쓸 수 있었어요." 비즈니스 관계. 강조한다. 계속. 손 잡으려고 하신다. 피한다. 자연스럽게. "아, 화장실 좀." 일어난다. 화장실에서 심호흡. 5분. 거울 본다. 화장 고친다. '30억. 30억. 참아라. 프로페셔널하게.' 스스로 세뇌한다. 돌아간다. 자리 바꿔 앉는다. 더 멀리. "화장실 멀더라고요." 웃으면서 말한다. 더 이상 가까이 못 오게. 거리 만든다. 이게 기술이다. 10년 배운 거. 노골적으로 싫다 하면 안 된다. 자연스럽게 거리 둔다. 미소 유지하면서. 술자리 끝나고 9시 반. 1차 끝났다. "2차 가실래요?" 질문 온다. "내일 아침 일찍 미팅이 있어서요." 거절한다. "한 잔만 더." 재차 요청. "정말 죄송해요. 다음에 꼭 뵙겠습니다." 고개 숙인다. 웃으면서. 택시 탔다. 기사님께 "빨리 가주세요." 10분 지나야 숨 쉰다. 제대로. 핸드폰 봤다. SE한테 문자 왔다. "차장님 어떻게 됐어요? 괜찮으세요?" "응. 잘 끝났어. 내일 얘기하자." 잘 끝난 게 아니다. 그냥 끝났다. 선 안 넘었다. 나도, 상대방도. 근데 이게 '잘' 끝난 거다. 여자 영업에겐. 남자 영업들은 술 많이 마시고. 택시비 많이 나오고. 다음 날 숙취가 심한 게 고민이래. 내 고민은 다르다. 선 지키면서 관계 유지하기. 프로젝트 따내면서 존중받기. '프로페셔널'로 기억되기. 집 도착했다. 샤워했다. 긴장 풀린다. 어깨 내린다. 오늘도 지켜냈다. 선을. 다음 날 아침 출근했다. 팀장님이 물어본다. "어제 CISO님이랑 미팅 어땠어?" "좋았습니다. 긍정적이셨어요." "뭐 특별한 얘기 있었어?" "BMT 잘하면 우리 쪽으로 기울 것 같다 하셨어요." 비즈니스 성과만 보고한다. 어제 있었던 것들. 말 안 한다. 말해봤자 "원래 그래" 소리 듣는다. "술자리가 그렇지 뭐" 라고 한다. "차장님이 잘 넘겼겠지" 라고 한다. 남자 선배가 "여자 영업이 유리하지. 고객이 잘 봐주잖아." 유리하다. 정말? 관계 만들기는 쉬울지 몰라. 근데 그 관계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 매번 선 지켜야 한다. 미소 유지하면서. '프로페셔널'과 '친근함' 사이. 줄타기다. 매번. SE가 커피 갖다 준다. "차장님 고생하셨어요. 제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괜찮아. 이런 거 익숙해." 익숙하다고 말했다. 근데 익숙해지면 안 되는 건데. 10년 했는데도 매번 긴장한다. 매번 계산한다. 매번 조심한다. 프로젝트 따내고 2주 뒤. BMT 끝났다. 우리가 선정됐다. 30억. 팀 회식했다. 다들 축하해줬다. "역시 차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소주 돌린다. 기분 좋다. 근데 구석에서 들린다. "차장님이 관리 잘하셨나 봐." "여자 영업이라 CISO님이 잘 봐주신 거 아냐?" 10년 했다. 레퍼런스 20개 넘는다. 제안서 스토리라인은 팀에서 최고다. BMT 발표도 내가 다 했다. 근데 '여자라서' 땄다고 한다. '관리 잘했다'고 한다. 관리가 뭔데. 정확히. 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너 잘했어. 실력으로 딴 거야." 스스로 말해준다. 아무도 안 해주니까. 또 다른 저녁 약속 다음 달. 또 프로젝트 있다. 다른 회사. 다른 임원. "차장님, 저녁 한번 하시죠." 또 간다. 또 계산한다. 무슨 옷, 어떤 거리, 어느 선까지. 10년 했는데도. 20년 해도. 이건 안 익숙해진다. 남자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영업 힘들어요?" "응. 힘들어." "어떤 게 제일 힘들어요?" 대답 못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매출 압박? 그건 다 똑같다. 경쟁 PT? 그것도 다 한다. 야근? 그것도 마찬가지. 근데 내가 하는 건 거기에 더해. 선 지키기. 거리 조절하기. '프로페셔널'하게 보이기. '여자'가 아니라 '영업'으로 기억되기. 이게 제일 힘들다. 근데 이건 말해도 이해 못 한다. 안 겪어본 사람은.10년 했다. 차장 달았다. 실력 쌓았다. 근데 아직도 매번 계산한다. 언제쯤 그냥 '영업'으로만 볼까.
- 04 Dec, 2025
'요구사항이 바뀌었는데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금요일 오전 10시 37분 메일이 떴다. 제목부터 불길했다. "제안서 관련 추가 요구사항 전달드립니다 - 급함" 월요일 발표다. 오늘 금요일. 주말 끼고 3일. 손이 떨렸다. 마우스 클릭했다. 읽었다. 다시 읽었다. 믿기지 않아서 세 번 읽었다. "기존 DLP 솔루션에 더해, 클라우드 환경 데이터 보호 방안도 제안서에 포함 부탁드립니다. SaaS 연동 사례와 AWS/Azure 환경에서의 구현 방법론, 그리고 클라우드 보안 컴플라이언스 대응 방안까지요. 참고로 경쟁사 A사에서는 이미 이 부분을 제안서에 넣었다고 들었습니다." 경쟁사 애기까지 나왔다. 전화했다. 고객사 보안팀장님. "팀장님, 이거 지금 추가하시면..." "영업팀에서 요청한 거예요. 임원진이 클라우드 전환 고려 중이라서요." "처음 RFP에는 없었는데요." "알아요. 근데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위에서 시킨 거라." 끊었다. 책상에 머리 박았다. 3일. 클라우드 아키텍처 새로 그려야 하고. 레퍼런스 찾아야 하고. BMT 시나리오 수정해야 하고. 발표 자료 다시 짜야 한다. 6주 준비한 제안서가 휴지 조각.긴급 회의 소집 슬랙에 메시지 날렸다. "@제안팀 @SE팀 @컨설턴트 긴급회의 11시 3층 회의실" 30분. 준비할 시간도 없다. 회의실 들어갔다. 다들 표정이 어둡다. 메일 본 거다. "일단 들어주세요." 상황 설명했다. 5분. 제안팀 과장이 먼저 말했다. "이거 월요일까지 불가능한데요?" "저도 압니다." "아니, 클라우드 파트만 50페이지는 나와야 하는데. 우리 레퍼런스도 약하고." SE팀 대리가 고개 저었다. "기술 검증도 안 됐어요. AWS 연동 테스트는 2주 걸리는데." "알아요. 다 알아요." 컨설턴트가 한숨 쉬었다. "방법론부터 새로 써야 해요. 클라우드 보안 프레임워크 전부 뒤집어야 한다고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경쟁사는 이미 넣었대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A사 제안서에 클라우드 파트 들어갔어요. 100페이지 넘는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안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대답 안 했다. 다들 안다. 탈락이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리스트업 합시다." 화이트보드에 적기 시작했다. 기존 레퍼런스 중 클라우드 연관된 것. 파트너사 사례 가져올 수 있는 것. 오픈소스 아키텍처 참고할 것. 컴플라이언스 매핑 기존 자료 재활용. 2시간 회의했다. 결론: 주말 반납.개발팀 설득 오후 2시. 개발팀장 만나러 갔다. 필요했다. 기술 검증 확인. "클라우드 API 연동, 지금 어디까지 돼요?" "안 돼요. 개발 일정에 없었어요." 예상한 대답. "데모라도 만들 수 있어요?" "데모요? 지금요?" "월요일까지요." "미쳤어요?" 미친 거 맞다. "고객사가 요구했어요. 안 넣으면 우리 탈락이에요." "그건 영업 문제잖아요." "개발팀장님. 이거 수주하면 개발 리소스 확보되는 거 아시죠? 클라우드 파트만 5억이에요." 5억. 숫자를 말했다. 개발팀장 표정이 바뀌었다. "일정은요?" "내년 상반기 개발 시작. 6개월 텀 드릴게요." "리소스는요?" "추가 인력 2명 요청할게요. 본부장님께."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목업만 만들면 돼요?" "네. 화면 구성이랑 플로우만 보여주면 돼요. 실제 연동은 나중에." "주말에 개발자 불러야 하는데요." "주말 특근비 처리할게요. 제 인센티브에서." 내 돈 나간다. 그래도 수주하면 받는다. "알겠어요. 대신 수주 확정되면 인력 꼭 받아내요." "약속합니다." 악수했다. 손에 땀이 났다. 개발팀 나왔다. 등에서 식은땀 흘렀다. 인센티브가 날아갈 수도 있다. 그래도 수주 못 하면 그것도 없다.금요일 밤 9시 사무실에 남았다. 제안팀 3명, SE 2명, 나. 피자 시켰다. 먹으면서 일했다. 제안팀이 클라우드 아키텍처 그렸다. SE가 기술 스펙 정리했다. 나는 스토리라인 잡았다. "기존 온프렘 환경 보호하면서, 클라우드 전환 대비한다. 이게 메시지예요." "하이브리드 접근이네요." "맞아요. 단계적 전환 시나리오로 가요. 1단계 온프렘, 2단계 하이브리드, 3단계 풀클라우드." 페이지 구성 다시 짰다. 기존 80페이지에서 130페이지로. 밤 11시. 초안 나왔다. "내일 10시 출근해서 다듬어요. 일요일 오후까지 마무리." "월요일 리허설은요?" "월요일 오전. 발표 오후 2시니까 가능해요." 다들 고개 끄덕였다. 표정이 죽어 있었다.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 불 껐다. 집 가는 택시 안. 휴대폰 봤다. 고객사 보안팀장님한테 메시지 왔다. "영업팀 상무님이 월요일 발표 참석하신대요. 클라우드 파트 꼭 신경 써주세요." 상무가 온다. 압박이다. 답장 안 했다. 할 말이 없었다. 토요일 10시 출근. 다들 와 있었다. 화면 보면서 페이지 넘겼다. "여기 다이어그램 화살표 방향 이상해요." "컴플라이언스 매핑 AWS 기준으로 다시 해요." "레퍼런스 고객사명 공개 가능한지 확인했어요?" 점심 먹고. 다시 수정. 오후 3시. 개발팀에서 연락 왔다. "목업 나왔어요. 확인해보세요." 달려갔다. 개발실. 화면 봤다. 클라우드 대시보드 목업. 데이터 흐름 시각화. SaaS 연동 인터페이스. "이거면 돼요?" "충분해요. 이거 BMT 때 보여드릴 수 있죠?" "네. 시연용 환경 셋업할게요." 고마웠다. "주말에 나와줘서 감사합니다." "수주하면 회식 쏘세요." "당연하죠." 돌아왔다. 제안서에 기술 구현 방안 추가했다. 저녁 8시. 90% 완성. "오늘 여기까지. 내일 마무리해요." 퇴근했다. 집 와서 샤워했다. 침대 누웠다. 눈 감았는데 제안서가 보였다. 페이지 넘어가는 게 보였다. 상무님 표정이 상상됐다. 잠 안 왔다. 새벽 2시까지 천장 봤다. 일요일 오후 마지막 점검. 오타 확인. 페이지 번호 맞추기. 목차 업데이트. 오후 4시. 완성. 130페이지. 클라우드 파트 48페이지. PDF 저장했다. 고객사에 메일 보냈다. "최종 제안서 제출합니다." 답장 왔다. "확인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사무실 나왔다. 해 지고 있었다. 편의점 들렀다. 맥주 샀다. 집 와서 마셨다. 한 캔. 생각했다. 이게 맞나. 요구사항이 바뀌는 건. 당연한 건가. 발표 3일 전에 던지는 게. 정상인가. 6주 준비한 게. 3일 만에 뒤집히는 게. 이게 영업인가. 맥주 한 캔 더 땄다. 월요일 오전 8시 출근. 발표 리허설. 회의실에서 프로젝터 켰다. 페이지 넘기면서 시나리오 점검. "온프렘 환경 현황 분석, 3분." "클라우드 전환 필요성, 2분." "하이브리드 아키텍처 제안, 5분." "기술 구현 방안, 4분." "레퍼런스, 2분." "투자 대비 효과, 3분." "질의응답, 5분." 총 24분. 30분 발표 시간에 맞다. SE가 기술 파트 리허설했다. 매끄러웠다. 컨설턴트가 방법론 설명 연습했다. 괜찮았다. 내 파트 연습했다. 목소리 떨렸다. 다시 했다. 나아졌다. 11시. 준비 끝. "점심 먹고 출발해요. 1시 고객사 도착." 다들 고개 끄덕였다. 밥 먹었다. 목으로 안 넘어갔다. 발표장 오후 2시. 고객사 본관 대회의실. 평가위원 7명 앉아 있었다. 보안팀장, 인프라팀장, IT전략팀장, 구매팀, 법무팀. 그리고 상무. 50대 중반. 날카로운 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자리 앉았다. 노트북 연결했다. 보안팀장이 말했다. "30분 드리겠습니다. 시작하세요." 심호흡했다. 시작했다. 첫 페이지. 회사 소개. 두 번째. 고객사 현황 분석. 세 번째. Pain Point 정의. 넘어갔다. 클라우드 파트. 상무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집중하는 거다. SE가 아키텍처 설명했다. 다이어그램 보여줬다. "AWS와 Azure 모두 지원합니다. 멀티 클라우드 환경에서도 통합 관리 가능합니다." 상무가 손 들었다. "잠깐. 여기 API 연동 부분, 실제 구현 가능한 겁니까?" 순간 조용해졌다. SE가 답했다. "네. 저희가 목업 준비했습니다. 보여드릴까요?" "보죠." 개발팀이 만든 데모 실행했다. 화면에 대시보드 떴다. 데이터 흐름 시각화됐다. 상무가 봤다. 10초. 20초. "괜찮네요." 숨 쉬었다. 발표 계속했다. 레퍼런스 보여줬다. 비용 분석 설명했다. 28분. 끝났다. "이상입니다. 질문 받겠습니다." 상무가 물었다. "클라우드 파트 일정은요?" "6개월 예상합니다. 단계적 구축으로 리스크 최소화하겠습니다." IT전략팀장이 물었다. "경쟁사 대비 강점은요?" "온프렘 환경 레퍼런스가 저희가 강합니다. 클라우드 전환 시 기존 정책 마이그레이션이 핵심인데, 이 부분 경험이 있습니다." 구매팀이 물었다. "가격은요?" "제안서 마지막 장에 있습니다. 3년 TCO 기준으로 산정했습니다." 5분 질의응답.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결과는 이번 주 안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나왔다. 엘리베이터 탔다. 1층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말 안 했다. 밖으로 나왔다. 숨 쉬었다. 수요일 오후 전화 왔다. 고객사 보안팀장. "최종 선정됐어요." "...네?" "축하합니다. 상무님이 클라우드 파트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금요일에 계약 미팅 잡을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끊었다. 손 떨렸다. 책상 잡았다. 슬랙에 메시지 날렸다. "수주 확정. 금요일 회식." 답장 쏟아졌다. "축하해요!" "드디어!" "고생했어요!"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 봤다. 3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요구사항 바뀌었을 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포기하고 싶었을 때. 그래도 했다. 이게 영업이다. 바뀌는 거 당연하다. 불가능한 거 해내는 거다. 그래도. 다음엔 좀 여유 있게 바꿔줬으면.금요일 회식 때 개발팀장이 물었다. "다음 프로젝트는 언제예요?" 나는 웃으면서 답했다. "다음 주부터요. 새 RFP 떨어졌어요."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또 바뀌겠지, 요구사항. 그래도 하겠지, 어떻게든.
- 02 Dec, 2025
RFP 받고 2시간 안에 win/loss 판단하는 법
RFP 받고 2시간 안에 Win/Loss 판단하는 법 월요일 9시 15분. 메일을 열었다. RFP가 와 있었다. 금융사다. DLP 솔루션. 예산 규모는 안 써 있다. 이름도 모르는 담당자 이메일이다. 이 시점에서 결정해야 한다. 제안서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시간이 없다. 제안 기한은 2주. 경쟁사도 많이 들어올 거다.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있는 기회인지 아닌지를 2시간 안에 판단해야 한다. 10년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제안서의 80%는 RFP 분석에서 결정된다. 좋은 고객사, 좋은 예산이 들어오면 제안팀도 열심히 한다. 내가 전략도 잘 세운다. 반대로 뭔가 안 맞으면 아무리 팀이 잘 쓴 제안서도 탈락한다. 그래서 처음 2시간이 중요하다.1단계: 고객사 기본정보 수집 (30분) 회사명, 업종, 규모를 먼저 확인한다. 금융사라고 해서 다 같진 않다. 시중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보험사, 증권사마다 예산 규모가 다르다. IT 투자 성숙도도 다르다. RFP에 회사명이 제대로 나와 있으면 좋은 신호다. 익명으로 돼 있으면 대기업이 테스트 성격으로 던지는 경우가 많다. 수주 확률이 낮다. 그들은 어차피 큰 SI사랑 이미 관계가 있다. 첫 번째 체크: 조직도를 검색한다. 이게 진짜 스킬이다. 요청사에 적힌 담당자 이름이 있으면 회사 조직도를 찾는다. 임원진, 부서장, 팀장 구조를 파악한다. 누가 의사결정권자인지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보보호팀 대리"라고 돼 있으면 그 조직은 아직 작은 조직이란 뜻이다. 예산도 크지 않을 가능성 높다. 반대로 "정보보호실 실장"이라고 돼 있으면 조직이 크다. 예산도 있을 거다. 두 번째 체크: 최근 뉴스를 찾는다. 같은 업종 경쟁사가 최근에 유사 제품을 도입했나? 그럼 그 고객사도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또는 보안 사건이 있었나? 그럼 컴플라이언스 때문에 다급해서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경우다. 세 번째 체크: 리소스를 확인한다. 이미 우리 제품을 쓰는 고객사인가? 기존 고객이면 다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다. win 확률이 70% 이상이다. 처음 만나는 고객인가? 그럼 경쟁사도 많이 들어와 있을 거다. win 확률이 30% 이하다. 이 30분 동안 정보를 못 모으면 이미 신호다. 고객사가 정보 공개를 안 한다. 폐쇄적인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고객은 의사결정 과정이 길고 정치가 많다.체크리스트 1: 고객사 기본정보 회사명, 매출, 직원 수 (다우존스 또는 기업 홈페이지) IT 투자 규모 추정 (업종별 평균값 대비) 정보보호 조직 규모 (공개된 조직도) 최근 1년 뉴스 (보안 사건, 인수합병, 신사업) 기존 솔루션 스택 (링크드인, 채용공고) 우리 고객인가? (영업 기록 확인)2단계: RFP 문서 분석 (60분) RFP를 읽으면 고객의 마음이 보인다. 첫 번째: 예산을 역산한다. RFP에 예산이 안 나와 있으면 따로 물어본다. "예상 투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예산이 없거나 정말 작다는 뜻이다. 예산이 나와 있으면 수익성을 본다. 우리 솔루션이 그 예산 범위 안에 들어가나? 커스터마이징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우리 표준가 기준으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DLP는 1000만 원대, DRM은 500만 원대, 접근제어는 2000만 원대다. 예산이 3000만 원이면 한 개 제품만 도입하거나 SMB 고객이다. 예산이 1억 원 이상이면? 플래그십 프로젝트다. 경영진의 눈이 가 있다. 우리 제안서도 탑 레벨이어야 한다. 두 번째: 요구사항을 읽는다. RFP의 기술요구사항을 본다. 너무 상세한가? 그럼 고객이 이미 다른 제품을 쓰고 있었거나 SI사가 컨설팅을 이미 해줬다는 뜻이다. 경쟁사가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신호다. 반대로 요구사항이 너무 일반적인가? "DLP 솔루션 도입을 고려합니다. 기술 스펙을 보내주세요." 이 정도면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안 본 거다. 우리가 컨설팅을 할 여지가 있다. 세 번째: 평가 기준을 본다. 가격비중이 몇 %인가? 30% 이상이면 가격 경쟁이 심할 거다. 기술비중이 몇 %인가? 50% 이상이면 우리 같은 기술 강한 회사가 유리하다. 서비스 평가 항목이 있나? 있으면 고객이 도입 후 유지보수를 중요하게 본다. 우리 SE 팀을 어필해야 한다. 네 번째: 경쟁사를 추측한다. RFP에 요구하는 기능들을 본다. 그 기능은 어느 회사 제품이 잘하나? 예를 들어 "AI 기반 이상탐지"라는 표현이 반복되면 경쟁사 제품 카탈로그에서 나온 거다. 경쟁사 선호도를 추측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그 기능을 빼고 우리 강점으로 간다. "AI 탐지도 좋지만, 정말 중요한 건 정책 기반 차단이다"라는 식으로. 다섯 번째: 평가 일정을 본다. BMT (Bench Mark Test) 기간이 몇 주인가? 1주일이면 짧은 프로젝트다. 우리가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최종 선정까지 몇 개월인가? 6개월 이상이면 고객사 내 의사결정이 복잡하다. 이 기간에 기술이 바뀔 수도 있고 인사이동이 있을 수도 있다.체크리스트 2: RFP 문서 분석 예상 투자 규모 (구간이라도 좋음) 기술요구사항의 상세 수준 (매우 구체적 = 경쟁사 진입 높음) 평가항목별 가중치 (가격 vs 기술 vs 서비스) 평가 기준에 우리 강점이 포함되나? BMT 기간과 방식 (온사이트 vs 온라인) 최종 계약까지의 일정 (계약금, 개발비, 유지보수) 제안서 제출 형식 (분량, 제출 매체) 계약 후 사후관리 조건 (SLA, 지원 기간)3단계: 내부 리소스 체크 (20분) 이제 우리 쪽을 본다. 첫 번째: 개발팀에 물어본다. 고객이 요구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가? 개발 기간은? 추가 비용은? 이걸 안 묻고 제안서를 쓰면 나중에 지옥이다. "이거 못 해요" 소리가 나온다. 고객은 화난다. 계약금을 못 받는다. 두 번째: SE 리소스를 확인한다. BMT 기간에 SE를 빼줄 수 있나? 다른 프로젝트와 겹쳤나? 좋은 SE가 배정되지 않으면 BMT에서 진다. 고객은 SE의 실력으로 제품을 판단한다. 세 번째: 레퍼런스가 있나? 같은 규모, 같은 업종의 성공 사례가 있나? 있으면 고객한테 보여준다. 고객은 "저희도 이런 회사처럼 성공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한다. 레퍼런스가 없으면? 그럼 우리가 파이오니어가 되는 거다. 위험이 크다. 고객도 신경 쓴다.체크리스트 3: 내부 리소스 요구 기능 개발 가능 여부 (개발팀 확인) 개발 기간, 추가 비용 (견적 확인) BMT 기간 SE 배정 가능 (SE 팀장 확인) 같은 업종 성공 사례 (3건 이상) 비슷한 규모 고객 사례 (1건 이상) 사전 PoC (Proof of Concept) 가능 여부[IMAGE_4] 최종 판단: Win/Loss 스코어링 이제 결정을 내린다. Win 신호 (이 중 3개 이상이면 GO):고객사 규모가 크다 (매출 1조 이상, 직원 5000명 이상) 예산이 명확하고 충분하다 (1억 원 이상) 기술요구사항이 우리 강점과 맞다 평가 기준에서 기술비중이 높다 (50% 이상) 우리 SE가 배정 가능하다 기존 고객이거나 레퍼런스가 있다 RFP가 너무 상세하지 않다 (우리가 컨설팅할 여지 있음)Loss 신호 (이 중 2개 이상이면 PASS):고객사가 작다 (매출 100억 미만, 직원 200명 미만) 예산이 너무 작다 (3000만 원 미만) 예산 정보가 없다 (물어봐도 안 알려줌) 경쟁사가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다 (RFP가 경쟁사 제품 기준) 요구하는 커스터마이징이 너무 많다 (우리 개발팀 거절) 같은 업종 레퍼런스가 없다 (신규 시도) 평가 기준에서 가격비중이 높다 (50% 이상) BMT 기간이 너무 짧다 (1주 미만)내 판단 프레임: Win 신호 4개 이상 + Loss 신호 0개 = GO. 풀로 제안한다. 탑 레벨 SE도 배정한다. Win 신호 3개 + Loss 신호 0~1개 = GO BUT. 차장급은 내가 커버한다. SE는 주니어도 괜찮다. Win 신호 2개 + Loss 신호 1개 = THINK. 팀 회의를 한다. 경쟁사 상황, 우리 백로그를 본다. 50-50이면 GO. Win 신호 1개 이하 + Loss 신호 2개 이상 = PASS. 제안서는 안 쓴다. 이메일로 관심만 표현한다.실제 사례를 들면: 케이스 1: 금융사 DLP (지난주 수주)매출 5조, 직원 1만 명 (큼) 예산 5억 원대 (충분) 기술요구사항 우리 기준 (우리 강점) 평가: 기술 60%, 가격 25%, 서비스 15% (기술 우위) 우리 고객 (레퍼런스 있음) 스코어: Win 6개, Loss 0개 → GO. 이겼다.케이스 2: 스타트업 DRM (지난달 탈락)매출 50억, 직원 200명 (작음) 예산 2000만 원 (작음) 기술요구사항 너무 상세 (경쟁사 제품명까지 있음) 평가: 가격 60%, 기술 30%, 서비스 10% (가격 우위) 처음 고객 (레퍼런스 없음) BMT 3일 (너무 짧음) 스코어: Win 0개, Loss 5개 → PASS. 했어야 했는데 시간 낭비했다.최종 체크리스트: 2시간 안에 이것만 확인하세요고객사 매출과 IT 투자 규모 RFP에 명시된 예산 규모 기술요구사항이 우리 강점과 맞는가? 평가 기준에서 기술 비중 우리 고객인가? 레퍼런스 있나? 개발팀이 가능하다고 하나? SE를 배정할 수 있나? 경쟁사가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나?이것만으로도 win/loss가 70% 이상 정확하게 나온다. 나머지는 감이다. 근데 10년 다니면서 느낀 건 이 감각도 중요하다는 거다. RFP를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데?"라는 느낌이 들면 보통 맞다. 왜냐하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위험신호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2시간 안에 결정하지 못하면 이미 lose 신호다. 시간을 못 정한다는 건 고객도 다급하지 않다는 뜻이다.[IMAGE_5]월요일 9시 30분. 결정을 내렸다. GO다. 제안서 기한은 2주. 제안팀 차장한테 전화했다. "이거 우리가 이길 수 있어." 그리고 SE 팀장한테. "좋은 사람 한 명 줄래?" 기다렸다. 둘 다 "알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미 우리 팀은 움직이고 있다. [IMAGE_1_PROMPT: Anime style illustration, Korean female solution sales specialist sitting at modern office desk, analyzing RFP document on laptop screen, morning sunlight through office window, warm neutral color palette, professional business attire with blazer, focused thoughtful expression, organized desk with coffee cup, soft Studio Ghibli inspired lighting, manga business aesthetic, high quality, detailed] [IMAGE_2_PROMPT: Anime style illustration, Korean female solution sales presenting research data on whiteboard to diverse team members in modern meeting room, pointing at organization chart and market analysis, warm color palette, professional collaborative atmosphere, Studio Ghibli inspired art style, soft natural lighting, business professional aesthetic, manga illustration style, detailed background] [IMAGE_3_PROMPT: Anime style illustration, Korean female solution sales engineer discussing technical requirements with development team, reviewing RFP specifications and technical documents on desk, warm office lighting, collaborative professional environment, Studio Ghibli inspired aesthetic, soft color palette, manga business illustration style, detailed technical equipment on desk, high quality] [IMAGE_4_PROMPT: Anime style illustration, Korean female solution sales closing RFP analysis decision, sitting confidently at desk with checklist and scoring system visible on laptop, morning meeting room background, warm professional lighting, determined focused expression, Studio Ghibli inspired warm colors, manga aesthetic, business professional illustration style, detailed] [IMAGE_5_PROMPT: Anime style illustration, Korean female solution sales making phone call to team leaders with positive energy, standing near office window with city view, warm golden afternoon light, celebratory professional mood, Studio Ghibli inspired soft palette, manga business aesthetic, dynamic professional posture, detailed modern office interior]RFP 한 장이 우리 다음 두 달을 결정한다.